설교
<설교> 두 과부 이야기 (열왕기상 17:8-6, 마가복음 12:41-44)
등록일:2012-03-11/작성자:관리자/조회:910

두 과부 이야기

열왕기상 17:8-6, 마가복음 12:41-44

 


1. 사르밧 과부

열왕기상 17:8-6에는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 때에 수년동안 가믐이 들어 백성들이 먹고살기가 힘든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먹을 것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따라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을 만났습니다. 그 과부는 나무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과부를 보고 마실 물을 떠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물을 가지러 가는 과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는 길에 먹을 떡도 한덩이 가져오라.” 

이 과부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언제 보았다고, 물가져오라, 떡 가져오라 하는가? 그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대꾸를 했습니다. 

보아하니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본데, 당신의 하나님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겠지만, 나는 지금 떡이 없소.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오. 나는 지금 나무가지를 줏어다가 불을 지펴서 내 아들과 나를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죽으려고 하고 있단 말입니다.”


엘리야는 이 말을 듣고 조금도 놀라거나 걱정하는 기색이 없이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날 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과부는 순종하였습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한끼 밖에는 해결할 수 없던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해피 엔딩으로 끝난 이야기입니다.

 


2. 가나한 과부

마가복음 12:41-44에도 한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놓인 연보궤 맞은편에 앉아 계셨습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갈때 헌금을 넣는 곳입니다.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을 많이 넣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왔습니다. 그 과부는 작은 동전 두닢을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 값어치는 한 페니 정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때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세상 계산으로 따지면 맞지않는 말입니다.

어떻게 두푼의 동전이 부자들이 넣은 많은 돈보다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과부는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훌륭한 산교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하나님께 바친 두 렙돈이란 큰 돈이 아니었습니다.  렙돈이란 그리스 최소의 동화로서 로마의 가장 작은 동화인 고드란트의 반에 해당되고 앗사리온의 8분의 1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작은 돈을 헌금했는데도 예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들었던 과부는 복있는 과부였습니다.

 


3. 재물과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헌금 생활은 기쁨으로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보화를 쌓아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금은 하늘 나라에 쌓아지는 우리의 보물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세상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애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편 세상에는 가진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고민하는사람도 있습니다. 돈을 버는 일보다 쓰는 일이 더 힘들다고 하는말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돈을 쓰고 나서도 칭찬듣지 못하고 욕을 먹는 경우들도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는 돈은 아무리 써도 후회할 일이 안생깁니다.

금요일 속회(구여)예배를 드리고 오래만에 점심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부임했을 때에는 속회예배를 오전 11시에 드리고 모두 점심식사를 하러 같이 갔었는데 한번 식사를 하러가려면 비용이 상당해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식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오후 2시에 속회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속회예배 장소를 제공하는 권사님이 11시에 모이자고 해서 점심을 먹으로 같이 갔습니다.

권사님들이 큰 원탁테이블에 앉으셔서 같이 식사를 하였습니다.  저도 같이 앉아서 식사를 했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한 권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저렇게 맛있게 잡수시는 것을 보니 얼나나 좋은지 모르겠어!”  얼나나 정신없이 제가 열심히 먹었으면 그렇게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는 속회 모임 때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2시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다과를 준비해 놓으면 목사님은 잘 잡수시지도 않는데, 점심을 하니 저렇게 맛있게 드시니 점심을 해야하겠다는 분들이 여기 저기에서 나왔습니다.  저는 그저 꿀먹은 벙어리 모양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점점 발전이 되었습니다. 한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죽기 전에 가진 것 다 쓰고 가야해요. 죽은 다음에는 소용 없어요.”  이 말을 들으면서 나도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지만 말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이 궁금했을 것입니다. “목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다가 하지 않았는데 그 말이 무엇일까?”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맞아요. 죽으면서 너무 많이 남겨놓고 가면 자식들 싸움만 붙여요.”

열심히 돈을 모으는 사람들은 보면 자식 생각하면서 모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는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가는 것이 정말 자식을 가장 사랑하는 일인지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인 줄 압니다.

 


4. 두과부의 공통점

사르밧 과부와 연보궤에 동전 두닢을 넣은 과부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 그들은 과부였습니다.

2)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 그들은 하나님께 가진 것을 드렸다는 점이 같습니다.

4) 또한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드렸다는 것입니다.  남은 것 중에서 한푼 두푼을 적선하듯이 드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드렸다는 것입니다.

5)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고 오늘의 헌신에 기쁨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6)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걱정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사르밧 과부에게는 먹을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동전 두닢을 넣은 과부의 뒷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고 열두광주리의 부스러기를 줍게하신 예수님이 그냥 계시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습니다. 분명히 생활에 걱정없이 살도록 전적으로 주님이 책임지고 살게 해 주셨을 줄 믿습니다. 

7)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5. 사랑의 실천

이민목회에서 이제 막 이민을 오신 이들을 도와주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고 즐거운 일입니다. 유학을 오신 분들을 돕는 일도 매우 보람있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미시간 주에 조박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오래전에 유학을 왔습니다. 저는 그 지역의 한 작은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학원선교를 하기위해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교회가 돕겠다는 편지를 만들어서 대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오는 학생들에게 입학원서와 같이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에 인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학을 오는 학생이었습니다. 그가 온다는 날자에 공항에 나가 집으로 데려오 몇일 동안 매스터 배드룸에서 지내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생 가족이 공부하기에 필요한 것을 장만하는 일을 위시해서 계속하여 도와 주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하여 도움을 받으니까 너무 미안해 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주저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도움을 받으세요. 그리고 당신이 남을 도울 형편이 되었을 때 인색하지 않게 남을 도와주십시오.”

그는 학교생활과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마침내 공부를 마치고 박사학위를 얻었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교회를 열심히 섬겼습니다. 나중에는 그 도시에서 제일 큰 교회의 주일학교 교장으로 열심히 교회를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줄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살 수 있음은 큰 은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할 때 남을 도와 주고 남에게 나의 것을 주는 일에 있어서는 훨씬 앞선 사람들임이 틀림없습니다. We are reasonably good givers. In fact most of us are very good givers. 하나님은 우리가 할수 있는 한 남을 사랑하고 도와 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주변의 사람들을 돌보라고 부르셨습니다. 


 

6. 우리의 헌신과 믿음

연보궤를 지켜보시던 예수님이 우리가 주일 예배에 와서 헌금하는 것을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괜챦게 사는 사람이 1불을 헌금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모든 것을 다 드린 과부를 칭찬하신 예수님이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가족들과는 일류 음식점에서 회식을 즐기면서 예배에 참석해서는 겨우 1불을 헌금하는 사람을 보시면서 무어라고 하실까? 또는 자기 쓸일에는 아까운줄 모르면서 교회 예배에 와서는 쓰다가 남은 돈 얼마를 헌금하면서 할일 다 했다는 식으로 의젓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무엇이라고 하실까?

 

오늘의 메세지는 사실 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는 믿음, 옳은 일, 선한 일, 참된 일을 위해서 아낌없이 주머니를 여는 믿음,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구 평화를 위해서 나의 가진 것을 내 놓는 믿음………

 

몇해전 르완다 근처 고마(Goma)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카탈리 피난민수용소(Katale Refuge Camp)에서 일하던 3명의 스카우트 대원이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본래은 30명이었는데 적군과 폭도들이 수용소를 습격하는 바람에 다 죽고 3명만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30명이 다 죽은 줄 알았습니다.

 

Scout Associations of Burundi, Zaire, Rwanda, and Tanzania에서는 학살을 피해 도망온 피난민들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이산 가족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수백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과 친척을 찾아주는 일, 굶주림과 병으로 죽은 수많은 시신들을 매장하는 일이었습니다. 12일 동안 스카우트 대원들은26,634구의 시체를 처리한 일도 있습니다. 그들은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음식을 제공하고, 식수를 얻기위해 구덩이를 매일 파다싶이 했습니다.

 

우리의 일을 이들의 일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르밧 과부나 두렙돈을 하나님에게 바친 가난한 과부, 그들은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르완다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모든 것을 주었듯이 그들은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 그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고 있었을까요? 사르밧 과부는 이제 죽었구나 했을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를 대신하여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병사들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르밧 과부, 가진 생활비 전부를 하나님에게 바친 과부,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스카우트 대원들, 그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한번 같이 놓고 비교해 봅시다.


 

맺는 말

 

인터넷 선교 포탈 사이트에 올려진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여러 해 전, 미국 북부 버지니아 주에서의 일입니다.

어느 몹시 추운 저녁에 한 노인이 강을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은 무릎 정도의 깊이였지만 군데군데 얼어 있어서 함부로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노인의 수염이 고드름처럼 얼어서 반짝였습니다. 춥고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되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풍한설 속에서 노인의 몸은 점점 뻣뻣하게 얼어갔습니다. 그때 노인은 얼어붙은 길 저편을 질주해 오는 흐릿한 말발굽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말을 탄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말을 얻어 타면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노인은 초조해 하며 몇 명의 신사들이 말을 타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사람이 앞을 지나가는 데도 노인은 도움을 청하려는 아무런 손짓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가고, 이어서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노인은 계속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한 사람이 눈사람처럼 서 있는 노인 앞으로 말을 타고 다가왔습니다. 이 신사가 가까이 오자 노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 노인을 강 건너까지 태워다 주시겠습니까? 걸어서는 건너갈 수가 없군요."
말의 고삐를 늦추며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서 올라타세요." 노인의 몸이 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그 신사는 말에서 내려 노인이 말에 올라타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노인을 강 건너로 데려다 주었을 뿐 아니라 몇 킬로미터 떨어진 노인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작고 안락한 노인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말에 탄 신사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습니다.
"노인장,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 갈 때는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까이 가자 얼른 태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척 궁금하군요. 이토록 추운 겨울날 밤에 당신은 계속 기다렸다가 맨 마지막에 오는 나에게 말을 태워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만일 내가 거절했다면 당신은 그곳에 그냥 남겨졌을 것 아닙니까?"
노인은 천천히 말에서 내린 뒤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이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람들을 잘 안다고 믿고 있지요." 노인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나는 말을 타고 오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내 처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태워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눈을 보았을 때 나는 그곳에 친절과 자비심이 비친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알았습니다. 당신의 따뜻한 마음이 곤경에 처한 나를 도와주리라는 걸 말입니다."
그 신사는 노인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해 주신 얘기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내 자신의 생각에 열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처지를 망각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미국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말을 몰고 백악관으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기 싫으면 사르밧 과부와 같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기 원하면 두 렙돈을 하나님께 바친 가난한 과부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손을 이웃을 향하고 하나님을 향해 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은혜를 우리가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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