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분 설교> 죽음을 넘어 (레위기 16:21-22)
등록일:2014-05-11/작성자:관리자/조회:1072

아론은 그의 두 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를 아뢰고 그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광야에 놓을지니라 (레위기 16: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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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두 아들이 하나님이 정하신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아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향해 지시를 내립니다. 염소 두마리를 준비하게 하십니다. 한마리는 잡아서 제사로 드리고 다른 한마리는 산채로 두게 합니다.

살아있는 염소가 백성들의 죄를 다 지게 만듭니다. 두 손으로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를 그 염소가 담당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염소를 광야로 끌고 가서 아사셀을 위해 놓아 가게 합니다. 여기에서 아사셀은 범죄한 자들의 죄를 온몸에 지고 방황하는 염소제물을 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머리 속에 간직하고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려 봅니다.

 

1.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신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모든 죄를 지고 골고다의 험한 길을 올라 가셨습니다. 마치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고 광야의 아사셀에게로 간 염소와 같이 우리 인생들의 모든 죄를 지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시인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 2014년은 참으로 잔인한 달로 기억되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막 꽃몽오리를 터트릴 것같은 우리의 사랑하는 어린 아이들이 한번 활짝 꽃을 피어보지도 못하고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무참하게 차거운 바닷물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은 잔인한 인간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목숨만을 구하기 위해 도망쳐 나오는 인간들의 추한 장면입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습니까? 자기 목숨 귀한 줄 알면 남의 목숨 귀한 줄도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그렇게 해서 부지한 목숨이 제대로 연명이 될 것 같습니까?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지고 십자가 골고다의 길을 피를 흘리며 올라가신 예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보상도 받지 않고 댓가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음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과 저주를 대신 받으시면서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자유하게 만들어 주기위해 그 험한 고통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믿고 주님으로 고백하면 참 자유이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기우는 뱃속에 같인 수백명의 귀한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보내지고 또한 몰려 갔습니다. 여러가지 장비가 동원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이다. 책임공방이 무성합니다. 법정에서도, 관가에서도, 거리에서도 술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끊치지를 않습니다. 잘못을 따진다면 면죄부를 받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사람을 죽게 만드는 일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아니면 묵시적으로 우리는 모두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일아난 사건이니 어떻게 하든 가장 현명하게 처리하기 위해 우리는 너 나 할 것없이 한 마음이 되어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살신성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남을 살리겠다는 생각을 선장과 선원들을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째서 그런 생각을 못하고 비겁하게 도망을 쳐 나온 것입니까? 배안에 갇혀 있는 사람을 향해 동요하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라고 했으면 자신들도 동요하지 말고 잠잠히 배 안에서 그들과 함께 기다려야 했던 것 아닙니까? 어째서 남은 기다리라고 해 놓고 자신들은  도망을 쳐 나온 것입니까? 배 안에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았다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나오게 하고 자신들도 나와야 했습니다. 너희들은 배 안에서 죽어라 우리만 살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을 배 안에 그냥 있으라고 했다면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고의적으로 죽이겠다는 생각을 그들이 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고 물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없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태라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했는지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모든 사람들의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영원한 멸망가운데 빠질 것을 아시고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들이 죽어야할 원인을 십자가의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끔히 제거하신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저주와 멸망에서부터 건짐받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이건,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건 못한 사람이건, 잘 생긴 사람이건 못 생긴 사람이건, 지금까지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못된 짓을 한 사람이건, 건강한 사람이건 병으로 고달파 하는 사라이건, 가문의 좋은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사람이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하면 영원한 생명과 복을 누리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 인간들을 대신하여 죽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도 세월호의 선원들과 같을 수 있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제한된 시간 안에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은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이 길에 들어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 특히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어린 항생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가실 수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바라기는 피기 전에 떨어진 꽃망울 같은 귀한 생명들과 뜻밖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 땅에서 누리지 못할 영원한 안식이 주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땅에서의 삶을 모든 것이라 생각하지 말고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얻어지는 영원한 삶이 있음을 믿고 위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내리는 보슬비와 같이 우리의 마음을 적셔주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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