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지혜
죽음 후에 남겨질 미련
등록일:2011-08-23/작성자:관리자/조회:667

어린 아이는 4개월 조금 넘게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노총각 노처녀가 결혼하여 낳은 첫 아기였기에 그들의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작은 장의사 채플은 300여명이 넘는 조문객들로 차고 넘쳤다. 장례식 끝에 한 사람씩 나가서 아이를 사별한 부모를 문상함으로 모든 예식은 끝이 났다. 나와 나의 아내는 중간에서 앞 쪽에 앉았기에 뒤에서 부터 나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조문행열을 따르기에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한 시간의 지루한 기다림 끝에 우리의 순번이 왔다. 아이 어머니는 작은 항아리를 가리키면서 그 안에 죽은 아이의 재가 들어있다고 했다. 숨을 멈춘 아이를 살려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였던 나의 손은 항아리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직도 놀란 마음에 젖어 있어서인가? 나의 손은 감각이 없었다.


아이가 숨을 멈추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심폐소생술(CPR)로 아이의 호흡이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했다. 숨을 멈춘 아이의 입에 나의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911을 급히 불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긴급구호요원들이 모든 장비를 이용하여 아이를 살리려고 했지만 한번 멈춘 아이의 숨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일행은 아이를 구급차에 싣고 병원으로 갔다. 그 후 들리는 소식에 아이는 영영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숨을 거둔 아이가 한줌의 재가 되어 쇠항아리 안에 갇혀 있었다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일이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이렇게 어린 아이가 그리도 짧은 생을 마감하고 숨을 거두게 허락하셨는지 도무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가 없었다. Why?


어린 아이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동차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아내에게 말을 했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재를 산에다 뿌려 달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을 화장하면 작은 용기(Urn)에 재를 넣어서 납골당에 안치하는데 그것도 나는 싫다고 했다. 교회의 목사로서 장례식 집례를 여러번 하면서 납골당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다. 납골당에 가면 재를 담은 항아리를 넣어둘 니치(Niche)를 사야하는데 그것도 값이 차이가 있는 것을 알았다. 눈높이에 위치한 니치가 제일 비싸고 천정 가까이 또는 바닥 가까이 있는 것은 값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사람은 죽어서도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매장을 하는 경우에 못지 않게 값도 만만치 않다.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해서 산에 뿌려달라고 한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매장을 하여 나의 시신이 썩어가면서 벌레들이 드글거리는 관 속에 들어 있던지, 아니면 재가 되어 항아리에 갇혀 보관되던지, 어떤 형태이건 그것들이 다른 사람에게 (자식들을 포함해서) 우상이 되는 것이 싫어서였다.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을 나를 사람들이기억하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것이 낫지 나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 앞에서 숙연해 지거나 다시 슬퍼지는 것이 나는 싫었다. 죽은 후엔 어떤 미련도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온갖 제한의 굴레를 벗어나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하나님 안에서 참 자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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