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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임마! 선생은 ..."
등록일:2010-06-29/작성자:관리자/조회:1011

너 임마 선생은 권위로 해 먹는건데 학생들 앞에서 그렇게 선생의 권위를 무시하면 되냐?” 이 말은 내가 변선환교수에게 들은 말이다. 변선환교수는 단순하고 솔직한 사람이다. 싫은 것은 싫고 좋은 것은 좋다고 사람 의식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감리교신학대학 2학년에 학사편입을 해서 3년간 공부하면서 변선환 교수의 강의를 3년 계속하여 들었다. 4학년 2학기 때는 그의 현대신학강의를 들었다. 어떻게 보았던지 나는 그에게서 늘 90점 이상의 성적을 받았다. 그런데 신학교 마지막 학기에 택한 현대신학 40점을 받았다. 그 사실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교무과에 잠간 들렸는데 직원이 학적부를 정리하다가 나를 보면서 어떻게 하다가 점수를 40점을 받았느냐?’고 물어서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에게 선생님과 싸워서 그런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어째서 학생이 선생님하고 싸웠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학생이 모자라든지 아니면 선생이 모자라서 싸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산상기도회에 참석하여 몸의 병을 고치고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는 체험을 한 나로서 그가 산상기도를 비판하는 것을 그냥 들어 넘길 수 없었다. 그는 교인들이 산상기도를 하는 등 열심을 내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 후에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자기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지성적인 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편이었다

변선환교수는 책보자기에 책을 싸가지고 강의실에 들어와 풀어놓고 강의를 하곤 했는데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불과 몇분이 지나지 않았는데 학생인 나는 그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이 말씀하는 대로 한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경우 서울문리대가 있는 종로구 명륜동 근처나 다니면서 전도를 하시고 청계천 시궁창 냄세가 나는 판자촌에는 근처도 가지 않으실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시골에서 배운 것 없이 그냥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못받게 되는 것입니까?” (1)

몇 명의 학생들이 나를 거들어 선생에게 항의를 했다. 결국 변교수는 책보자기를 펴서 책을 다시 싸가지고 강의를 중단하고 나가버렸다. 그날 오후 4시경이었다. 나는 학교 현관에서 변교수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명령조로 말했다. “ 너, 김무영, 나를 따라와!” 그의 교수실로 따라 간 나에게 나무 의자를 가리키면서 , 거기 앉아!”라고 명령했다. 나는 명령대로 나무의자에 앉았다. 매우 성난 표정으로 그는 나에게 어떻게 선생의 권위를 그렇게 깔아뭉게는가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솔직하게 나에게 말했다. “나는 믿음이 없다. 단지 책을 보고 하는 말이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했다. “나는 성생님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교수의 말을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생각하는데 책임지지 못할 말은 삼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단지 어느 학자가 이러 이러하게 말하더라라고만 해 주셔도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실은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에 학사편입을 하는 학생들이 한 학년에 2, 3명에 불과했는데(2) 그들 중 절반이상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것을 보고 심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던 나였다.  

결국 학기말 시험을 치루게 되었고 변교수는 나를 잡기 위해 한 문제를 시험문제 네 문제 가운데 첫번 문제로 넣었다. 나는 소신대로 답을 썼고 결과적으로 성적은 40점을 받았다.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나를 잡기 위해 낸 문제는 내가 소신껏 썼기 때문에 틀렸다 하더라도 다른 문제는 배운대로 정답을 썼는데 그렇다면 75점은 받았어야 하는데 어째서 점수가 40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첫문제의 답에 열을 받은 선생께서 아래 답안은 보지 않고 메긴 점수였나보다

학적부를 정리하던 교직원은 한번 교적부에 올라가면 평생 고칠 수 없으니 선생님을 찾아서 성적을 고쳐 받으라고 권하였지만 나는 싫다고 했다. 언젠가는 나도 목사가 될텐데 그 때 같은 목사의 입장에서 한번 이야기를 나누겠노라고 했다. 40점짜리 과목 성적때문에 신학대학 졸업을 못할 줄 알았는데 나는 졸업식에서 졸업생대표로 답사까지 하고 졸업을 했다. 한편 결과적으로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얼마를 지난 후 영국옥스포드대학교에 유학을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한 과목 때문에 평균성적이 80점을 넘지 못해 문교부가 시행하는 유학생 시험도 못보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그 후 목사가 되어 일찍 미국에 온 관계로, 또한 변교수께서 생각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관계로 같은 목사의 입장에서 대면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좀 아쉽다

이제 내 나이도 70이 되어오는 마당에 지난 일을 다시 돌이켜보니 인생을 무상하다고 해야 할까? 항간에 변선환교수를 미화하기 위해 원고를 모으는 사람이 있다하기에 사람을 평가하려면 안팎을 모두 헤쳐 놓고 평가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마음이 들어 필을 잡아보았다. 내가 경험한 변선환은 솔직하지만 자기 감정을 콘트롤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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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감리교신학대학에 다닐 당시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이 종로구 명륜동에 있었고, 청계천은 지금처럼 시원한 물이 흐르고 고기떼가 노는 곳이 아닌 판자집이 즐비하고 시궁창냄세가 진동해 사람들이 피하려는 곳이었다.

(2) 당시에는 M.Div. 과정이 없었다.

(20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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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의견[1]

  • 손님

2011-02-03 06:39:12

안녕하세요 목사님! 홍인수 목사입니다.
목사님의 경험을 들으니 제 기억도 새롭습니다. 저도 대학교 4학년때 변선환교수 과목 낙제 되어서 졸업 못했습니다.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말이 참 안통하는 분이죠..저도 총학생회 총무로 졸업을 했습니다. 회장이 탄핵에 오른 이후로는
사실상 학교의 학생회 활동 모든 부분을 책임져야 했는데 당시 학장이 변선환 교수였죠.
제 나름대로는 학교를 위해서 어용총학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무단히 애를 썻는데
돌아온것은 낙제뿐...
이 분이 솔직한 것이 장점이지만 자기 감정을 통제 못하는 성격때문에 여러가지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제 활동기간의 학장님이시라 나름대로 애정이 많이 가는 분이죠.
함께 이뤄놓은 성과들도 많고...

자주 뵙겠습니다..건강하세요..기쁘고 즐거운 명절 보내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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