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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격에 넘친 졸업식 만찬
등록일:2017-06-13/작성자:관리자/조회:636

마침내 외손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학교도 빠지지 않던 아이가 고 3에 들어서면서 달라졌다. 학교 결석도 잦고 과제물도 제대로 하지 않고 테스트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졸업식을 앞두고 학교에서는 부모에게 연락이 왔다. 이대로 가면 이번에 졸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였다. 부모는 물론 우리들까지도 근심에 쌓이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 주었다. 테스트를 다시 받으라는 것이었다. 외손자는 학교의 제의대로 테스트를 받았고 결과는 좋았다. 그래서 마침내 졸업 가운을 입게 된 것이다.

 

미시간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세 아이의 엄마인 집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가 생겨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고 한다. 영어가 부족하니 도와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교실에서 시험지를 받으면 가지고 있다가 백지를 낸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두번이 아니란다. 선생님은 아이가 데이드림(Day Dream)을 하는것 같다고 한다. 그렇던 아이가 이제는 청년이 되어 사회인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아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그 아들은 나중에 좋은 학교에 진학하여 공부도 잘하고 졸업 후 직장도 좋은 곳에 얻어 부모의 자랑이 되었다고 한다.

 

나의 작은 아들은 정형외과 전문의로 이웃에 살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크게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가 아니었다. 보통 이하라면 맞을 것 같다. 그렇던 아이가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달라졌다. 방학 때 집에 오면 하루 종일 책과 함께 하곤 했다. 그의 삶에는 책과 교회와 집 밖에는 없어 보였다. 하루는 아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책을 보면 지루하고 힘들지 않으냐?” 그의 대답은 예외였다. “나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 재미 있어요. 세상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재미 있는 것이 없어요.” 그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의과대학을 두 개나 졸업했다. 의과대학 하나를 마치기도 쉽지 않은데...... 자신의 전공 영역을 넓히기 위해 그는 과감하게 다시 4년의 의과대학 공부를 더 하였다. 목회자의 가정에서 그 엄청난 학비를 대 줄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학비를 장학금과 융자를 받아 해결했다. 학업과 전문의 수련을 모두 마치는데 20년이 걸렸다. 마침내 50만불 이상의 학자금 부채를 안고 사회인으로 직장을 얻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의과 학위를 두개 가졌기 때문에 다른 의사 보다 수입이 더 많아 질 것이라면서 걱정을 하지 않는다. 의사생활 1년 만에 300만불짜리 집을 샌프란시스코에 장만하고 입주했다.

 

우리의 옛말에 “대기 만성”이라는 것이 있다. 큰 그릇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일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나던 부모는 친 할머니 할아버지와 우리 내외를 초대해 만찬을 열었다. 외손자 졸업식날 가족이 모인 식사 자리는 안도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졸업 가운을 입은채 여동생과 같이 식당에 들어서는 외손자를 모두 환영했다. 나를 찾아와 인사하는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시작이다.” 그도 자신있게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졸업하지 못할번 한 아들을 맞는 부모와 온 가족은 감사와 기쁨이 서로 얽혀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겪은 고뇌는 외손자 자신이 겪었을 고뇌를 결코 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서 전에 보지 못한 자신감을 느끼면서 나는 기뻤다. 할아버지와 외손자의 골프 회동을 제의했다. 그는 쾌히 승락했다. 그의 시원스런 대답을 들으면서 기분이 한껏 좋았다. 대기만성! 귀한 외손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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