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대화의광장)
순회예배자(Circuit Worshiper)
등록일:2013-02-26/작성자:관리자/조회:432
요한웨슬레는 감리교운동을 하면서 전에 없던 말을 만들어 냈다. 그 중의 하나가 순회전도자(Circuit Rider)이다. 교역자가 부족한 상태에서 한 목회자가 여러 교회를 돌보게 되면서 한 교회에만 머물지 않게 된 현상을 지칭한 말이다. 최근에 나는 다른 말 하나를 만들어서 나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순회예배자(Circuit Worshiper)가 그 말이다. 순회예배자(Circuit Worshiper)라는 말을 만들기 전에는 주일이 되면 오늘은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고민스러울 때가 많았고 찾아 가서도 어쩐지 불편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한 교회를 정해놓고 주일예배에 참석해 보았지만 번민만 가중되었다.

1. 순회예배자로의 새 삶
몇일 전 처음으로 순회예배자로 태평양 바닷가에 자리잡은 한 두명 동양인 외에는 99%가 백인들만 모인 연합감리교회를 방문하였다. 물론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구테어 목사 티를 낼 필요가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장을 피하는 것이 좋다.) 나는 처음으로 순회예배자로 그 교회를 위한 기도와 함께 예배당 문을 들어섰다. 이러한 나를 하나님 밖에는 그 누구도 알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 오늘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 주옵소서.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경험하게 해 주소서.
      오늘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기도를 마음에 품고 찾았기에 그들이 나를 알던 모르던 상관 없이 나의 그 교회 예배 참석은 큰 의미를 가진 것이 되고 내 심령은 기쁨이 충만했다.

미 국 연합감리교회(The United Methodist Church)에는 목사들에 대한 성문화 되지 않은 규율이 하나 있다. 교회에서 은퇴를 하게되면 자신이 섬기다가 은퇴한 교회에 적어도 1년 동안은 얼굴을 내밀지 말라는 것이다. 후임자가 빠른 시일 안에 교인들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친근해 지는데 전임자가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조치가 아닐까 한다. 나도 은퇴를 하면서 교회까지의 거리가 자동차로 5분밖에 되지 않는 곳에 살게 되었지만 불문률을 철저히 따랐다. 새로 부임한 후배 목사에게 "나도 전화를 하지 않을 터이니 당신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선언하고, 교인들과도 왕래를 끊은 가운데 지금까지 관계의 단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덕분이라고 할까? 새 목사를 맞은 교회는 내가 있을 때보다 더 부흥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기쁘고, 한편 나는 이 교회 저 교회를 찾아 다니다 마침내 순회예배자로 새 삶을 살게 된 것이다.(1)

2. 은퇴목사의 고민
은 퇴목사가 되어서 겪게 되는 고민 중의 하나를 말하라고 한다면 주일예배에 참석할 교회를 찾는 일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어떤 선배 목사는 은퇴 후 집 근처에 있는 교회를 몇번 참석하기도 하고 집에서 내외가 앉아서 예배를 드리기도 하였다. 찾아간 교회에서는 어쩐지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았고 내외가 앉아서 드리는 예배도 만족하지 못했다. 마침내 동네의 미국인 교회를 빌려서 새교회를 개척하였다. 교회 개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나에게 이제는 주일이 되어도 예배 드릴 교회를 찾는 고민 하나가 덜어지게 되었다고 자랑하였다. 그런데 3년만에 그는 스스로 목회를 포기하고 교회 문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그는 또 다시 주일예배 때문에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은퇴목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대도시에서는 은퇴목사들끼리 교회를 만들기도 한다. 은퇴 후 원로목사가 되어 교회에서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그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다른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목사도 있다. 한편 오랜 세월 목회를 한 교회에서 또는 본인이 설립하거나 부흥시킨 교회에서 은퇴한 이들 중에는 원로목사로 추대를 받아 여전히 그 교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도 종종 만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얼마나 노후의 늙은 목사들의 영혼에 만족을 가져다 줄까?

3. 주어진 자유를 효과적으로
어떤 경우라도 지역교회(Local Church)가 아닌 연회(Annual Conference)의 회원인 은퇴목사가 어느 지역교회에 매여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일평생 지역교회에 파송을 받아 매여 살았으면 족한 것이지 은퇴를 하고 나서도 소속목사 또는 원로목사라는 간판 아래 지역교회에 매여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대형교회를 이룩하거나 안정된 교회 성장을 이룩한 공로(?)로 상당한 은퇴금을 받은 사람은 넉넉한 재물 중의 일부를 들고 후배들의 교회를 찾아 가서 중심에 품은 기도로 소리 없이 축복하고 들고 간 귀한 헌금으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연약한 교회 살림에 보탬을 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 못하여 손에 든 헌금은 없어도 그 날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를 위하고 참석한 교인들을 위한 간절한 축복의 마음을 기도에 담아가지고 찾아 가서 함께 예배를 드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2)

목사는 죽을 때까지 목사이다. 이 말은 목사에게는 죽을 때까지 사명이 있다는 말이다. 이 사명을 깨닫고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남의 눈치 볼 필요도 없고 남에게 신세질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남에게 군림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더욱 안된다. 단지 죽을 때까지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후배 교역자들과 일생동안 아끼고 사랑했던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순회예배자(Circuit Worshiper)로 살아 간다면 은퇴목사의 위치는 더욱 귀해 질 것이고 우리의 뒤를 따라 언젠가는 은퇴목사의 대열에 합류할 후배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 가슴 벅차다.

한 순간이라도 은퇴목사가 스스로 이제는 폐기물과 같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것은 불신앙이라는 팻말을 스스로 붙이는 격이 될 것임을 명심하자. 또한 은퇴목사가 원로목사라는 간판을 달고 상왕노릇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잊지 말자. 은퇴목사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실 때까지 안수받은 목사로서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갈 길을 가다가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 나의 경우 41,826개의 연합감리교회들이 내 교회라는 생각 가운데 (남은 인생길 동안 몇 교회나 찾아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순회예배자(Circuit Worshiper)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야 말로 은퇴를 통해 주어진 자유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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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교회를 정하고 주일예배에 참석할 때마다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와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순회예배자가 경험할 자유와 평안을 잃어버리기 쉽고, 그 교회에 매여 미묘한 인간관계의 와중에서 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순회예배자를 나는 더 선호한다.
(2) 가난한 은퇴목사를 위해서는 교단에서 순회예배자기금(Circuit Worshiper Fund)을 조성하여 교통비를 환불해 줌으로 은퇴목사의 삶에 활기를 불어 넣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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