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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설교 강단에 서게 된다면
등록일:2012-12-01/작성자:관리자/조회:529

예배 도중에 나와 본 경험이 있는가? 용변을 참지 못하여 나온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예배당에 앉아있기가 고통스러워 자리를 박차고 나와본 경험이 있는가 말이다.

한번은 미국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나와본 경험이 있다. 그날은 담임목사가 휴가 중이라 설교시간에 강단에 선 사람은 목사가 아니라 어느 사회사업기관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반드시 목사만이 설교를 해야한다는 고루한 생각을 떨쳐버린지 오래된 나로서는 그가 강단에 설 때만 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강단에서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태도는 바뀌고 말았다. 분명히 그는 강단에서 설교를 하지 않고 횡설수설하면서 자기 사회사업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 놓는 것이 아닌가? 그 교회는 나를 위시해서 은퇴한 목사가 두명이나 출석을 하고 있는데 담임목사는 어째서 그런 사람을 강단에 세울 마음을 먹었을까? 참을 수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는 예배 도중에 교회당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교회를 찾지 않았다. 

일평생 설교를 하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설교자의 고뇌가 어떤 것인지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이 신학교를 졸업한 교역자임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참석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화가 나게 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음를 보게 된다. 오늘 날 신학교에서 어떻게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설교를 하는 그들의 자세가 도무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다시 내가 설교단에 선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 보았다.  


1. 설교를 위해 정성을 기울이겠다.

성의없이 설교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신성모독을 하는 것같아 안타깝다. 설교원고를 작성하지 않고 성경책 하나만 달랑 들고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대는 사람을 보면 엮겹다. 세상에는 성경을 다 아는 사람이란 하나도 없다. 성경에는 바울을 통하여 이렇게 고백한 것이 기록되어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마찬가지로 나는 이렇게 선언하겠다. “성경을 다 아는 사람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또 읽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알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다 안다는 것은 어느 모로보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디서 배운 버릇인지 마치 자기가 성경을 다 아는 것처럼 건방을 떠는 사람이 강단에 서서 제멋대로 지껄이는 것을 보면 구토가 날 지경이다.       

설교를 위해 펜을 들어야 한다. 써야 한다. 귀찮을지 모르지만 내가 강단에서 전할 말씀이 종이 위에 글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요즈음은 컴퓨터가 있어서 얼마나 설교 원고를 만들기에 편리한가? 만들어 놓은 원고를 얼마든지 힘 안들이고 에디팅 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설교원고에 매여서는 안된다. 이 말은 설교원고가 없이 설교하라는 말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설교자와 회중 사이에 아이컨택이 중요하기 때문에 설교원고는 있으나 마나 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래도 글로 정리된 설교원고는 있어야 한다. 다시 내가 강단에 서게 된다면 정성껏 설교를 준비하도록 하겠다.


2.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

부흥강사들이 잘 쓰는 말 중의 하나가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는 표현이다. 주일예배를 부흥회로 착각하지 말라. 내용은 별것도 아닌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는 것은 금해야 한다. 무지한 교인들 중에는 설교자가 내용과는 관계없이 그 말에 힘을 주어 내 뱉으면 생각 없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는데 참으로 불쌍하다. 함부러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이름이 그렇게 가볍게 쓰여도 좋다는 특허를 받은 적이 있는가?

설교자가 이 표현을 쓸 때 보면 교만이 강단에서 흘러 내리는 것같아 아주 불쾌하다. 강단에서 겸손이 흘러내리게 해야 한다. 겸손한 모습으로 강단이 채워져야 한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서는 겸손으로 가득한 강단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설교자는 강단의 높이 만큼 윗자리에 존재하고 회중은 저만치 설교자를 쳐다보는 낮은 자리에 존재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당 구조를 강단은 낮은 위치에 그리고 회중석은 높은 위치에 있게 만들기도 하였는데 (물론 그 예배당 터가 비탈진 곳이라서 부득불 그렇게 만들기는 했지만) 차라리 새로 건축하는 교회당은 그렇게 지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높은 교회당 강대상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 하늘에서 이슬내리듯이 내리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축복권을 내세우는 설교자들이 아직도 많다. 흔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축복)합니다.”라는 표현을 그들이 쓰는 경우 자신들은 마치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간 듯 착각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으렸다. 내가 다시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게된다면 주님의 이름을 함부로 쓰는 경거망동함을 멀리하고 나는 십자가 뒤에 숨어버리고 주님의 은총이 강단에서 흘러나오게 최대한 겸손하도록 힘쓰겠다.   


3. 한 시간의 설교를 위해 열 시간의 기도로 준비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말과 다르다. 인간의 말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을 통하여 설교자에게 주어진다. 설교자가 만든 말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으로서의 설교가 되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교자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해야 하는데 기도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고등학교 시절 함께 공부한 친구가 목사가 되었다. 그는 유명한 부흥강사로 전 세계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친구이다. 한번은 그를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다. 교인들과 나는 큰 은혜를 받았다. 부흥회를 마치고 공항에 가는 길에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 주석서를 참고하기에 그렇게 성경을 잘 풀어가는가?”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동안 침묵이 흐른뒤 그는 입을 열었다. “나는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 기도를 한다네. 기도 중에 성령님께서 나에게 깨달음을 주시는거야.”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함께 느꼈다. 나는 얼마나 기도를 게을리 했던가 반성하였고 그렇게 놀라운 방법이 있는데 그 동안 주석서를 뒤지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였던가 부끄러웠다.

성령님께서는 성경을 읽고 기도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설교자에게 들리도록 해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중에 주어진 말씀을 설교원고로 정리하고 그 말씀이 내 입에서 원고를 보지 않고도 물 흐르듯이 나올수 있도록 기도로 준비한다는 것은 설교준비의 최상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몇 사람이 되었던지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하겠다. 그 말씀이 혹시 사람의 비위를 거스리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람 눈치보지 않고 하나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담대함을 더 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겠다.

힘들겠지만 이제 나에게 설교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시간의 설교을 위해 열시간의 기도로 준비하도록 힘쓰겠다.

 

하나님! 교회를 찾아 동서남북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강단에 세워진 설교자들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늘 들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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